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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돛

앉아있던 자리에서 바지에 붙은 마른풀을 털고 일어서는 일이 참 힘들다.

또 한해가 지나간다.

한국으로 이사 가고 싶은 갈망은 질화로에 담긴 불씨처럼 사위지 않고가슴 깊숙한 곳에 묻혀있다.

연습도 복습도 할 수 없는 인생 오후를 사는 지금, 진작갈 걸 그랬어 하는 마음과 여기에 눌러앉고 싶은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어제저녁 한국에 사는 친구와 긴 전화통화를 했다.

한 번도 주거 이동 없이 결혼때 장만한 건물 옥상에 과일나무들, 화초들 기르며 남편과 유복하게 사는 친구 K는오늘도“나는 네가 젤 부러워” 한다.
나는 정해진 시골 버스를 타고 늘 다니는 길을 오가며 평화롭게 지내는 그 친구의 생활이 부러운데 말이다.

바쁘게 사는나와는 달리 카톡으로 보내오는 그 친구사진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준 할머니들이 한가하게 노니는 사진들이다.

친구 K는독일, 서울, 뉴질랜드, 호주 외국 생활 30년된 나를 부러워한다.

한 번도 맞벌이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그 친구는 오늘 저녁 전화만 해도“네가 최고로 멋지게 산 거야,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호주에서 사는 네가 부러워, 더 욕심부리면 과욕이지” 했다.
“외국 생활 그저 그래” 하는 내 솔직한 말을 그 친구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다니는 회사를 이제는 그만두고 싶다고했더니“넌 행운이야, 지금 그 나이까지 일할수 있다니 축복받은 거야” 한다.
글쎄다, 내가 과연 멋지게 산 것인가 축복받은 삶인가 되짚어 본다.

30년 이민 생활은 열심히 살았다고는 여겨지나 잘 살았다고까지는 아니다.

속이 빈 강정처럼 왠지 모를 외로움 속에서 두서없이 지내며살아왔던 것 같다.

집 강아지는 한적한 시골길도 가보고, 여러 가지 음식들이 진열된 도시도 가보고 산동네도 지나며 골고루맛본 들 강아지를 부러워하지만, 들 강아지는 요즘 들어 집 강아지가 부럽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말씀하신‘잔디의 철학’이 떠오른다.

잔디밭에 서면내가 서 있는 잔디는 듬성듬성하고 먼 곳을 바라보면 그곳은 잔디가 푸르러 그곳으로 달려갔더니 그곳 역시 발 밑에 잔디가듬성듬성하더라는, 남이 가진 것이 더 좋아 보인다는 말이었다.
동네 신발가게에서 빨간 가죽으로 만든여름 샌들을 샀다.

얼기설기 엮어 만든 올해 유행하는 샌들이다.

빨간 샌들을 신고집을 나서니 갈색이나 검은색 구두를 신고나설 때 보다 기분이 밝아지고 마음에 환한 봄볕이 드는 것 같았다

미국의 지미 카터 어머니는 ‘오늘은 어떤 즐거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하며 잠자리에서일어난다고 한다.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등 무거운 생각은 접어두고 그때그때나 자신의 선택을 믿으며 마음 흐르는 대로 살아야지 해본다.

아내와 엄마로 부산했던 어제보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보다 지금을 더 사랑하며 말이다.

생리적 나이로는 반생을 훌쩍 넘겼지만, 마음의 나이는 하프타임이다.

운동경기에서 중간 휴식시간 이란 후반전 시작 전 전반전 경기를 되돌아보고 후반 경기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를 재조명하는 시간이라 한다

내 인생의 하프타임에 머무는 지금, 하고 싶은일들이 아직도 많다.

칠십이 넘도록 회사에 다니는 것은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운좋게도 산책 나온 행운과 마주친 것이라여긴다.

나는 근무 시간 중 차를 해변도로에 잠시 세워두고 차창으로 들어오는 해변의 소리를 듣는다.

숨겨온 거품을 바위에하얗게 뿜어 놓고 물러갔다 다시 밀려오는파도와 그 위에 반짝이는 햇빛에 눈이 부실 때면, 하느님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에서 살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다.

감정을 글로 쓰는 능력이 아직 부족하지만,문학회에 나가는 날도 나는 참 좋아한다.
마음의 흐름을 글로 써 내려갈 때의 고뇌가 없으랴마는 글이 완성되었을 때의 보람은 성패에 앞서 기쁨과 만나게 된다.
나의 생애의 후반전을 어느 곳에서 펼칠것인지를 결정 못 하고 있다. 한국에서 여러 남녀 노인들이 합숙하며 그림 그리기,사교댄스, 등산, 여행 등 함께 어울려 생활하는 노인정이 매력 있어 보이는 것은 웬일일까?

마음 맞는 친구와 마루가 넓고 돌담 울타리가 나지막하게 쳐진 시골집을 공동으로 구매하여 텃밭 가꾸고, 장날이면장에 함께 다니며 자연 속에 파묻힌 시골할머니로 오순도순 사는 모습도 재미있어보인다, 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져 가는친구들 만나 수다 떨며 맛집 찾아다니며단풍 구경 다니는 즐거움이 오라 손짓하더니, 오늘은 작은 화단이 딸린 주택에서 책장 빽빽하게 진열된 책들 읽으며 그동안시드니에서 사귄 친구들과 지내며, 지나간이야기들 글로 써보고, 고목 사이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음미할 수 있는 시드니가좋다.
한국에 가서 살다가 한국에 묻혀야 하는건지 마지막까지 시드니 살다가 이곳에서 잠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더 늦기 전에귀국할까 하다가 아니야 후회할지도 몰라과감히 결정을 못 한다.
문득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 >에 쓰인글귀가 떠오른다.

‘인생에 유효기간 이란 없고 꿈이 있는 한 인생에 정년은 없다.’ 난이 말을 참 좋아한다.

전반전은 신겨진 신발에 몸담고 바삐 살았다.

후반전은 내가선택한 빨간 샌들을 신고 따스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나만의 오솔길을 걷고 싶다.
마지막 후반전 경기를 어느 곳에서 펼쳐야할지 결정을 못 한 채 무거워져 가는 엉덩이는 떠나지도 못하고, 포기도 못 한 채 하루가 가고 일 년이 지난다.

한나 안/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mail protected]한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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